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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24. 21:33 이색 블로그 탐방
"돈 때문에 블로그를 시작하지 말고, 열정으로 시작하세요"
-프랭크 워런
http://postsecret.blogspot.com

웹서핑을 하다. 흥미로운 사이트를 하나 발견했다. 바로 포스트 시크릿
2004년 말 포랭크 워런은 워싱턴 DC의 지하철 역 등지에서 사람들에게 엽서를 나눠 주면서 익명이라도 좋으니 아무 비밀이나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더 나아가 엽서가 공공 예술 프로젝트의 일부니까 비밀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대로 엽서를 장식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프로젝트는 워싱턴 DC의 갤러리의 전시되며 정점에 달했다. 전시는 4주뒤에 끝났지만 엽서는 계속 들어왔다. 일주일에 수백 통씩. 어떻게 해야 할까? 전 세계 거리에서 실제로 찾을 수 있는 생활 속의 작은 이미지(쇼핑 전단, 개인적인 메모, 주차권 등)를 전시하는 파운드(www.foundmagazine.com)라는 블로그에서 영감을 얻은 워런은 엽서의 비밀을 블로그를 통해 웹에 보관하기로 결심했다.

I realize now that Mom has always been enough of a Dad to fill the spot
where you should've been.  Happy Father's Day, Mom.

당시 엽서는 수천 장에 달해 모두 올릴 방법은 없었다. 방문자들에게 다시 방문하거나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달라고 권장 할 수도 있겠지만, 다 못 올린다면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지 말아달라고 해서 실망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제한적인 전시에 대해 이해를 구살 수 있었고,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는 대가를 제공할 수 있었다. 적절히 처리하면 방문자들이 더 많이 보고 싶어서 꼭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워런은 매주 20장의 엽서를 바꿔 전시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래서 포스트시크릿이 시작됐다. 매주 토요일밤 워런은 공들여서 20장의 엽서를 고른다. 이 20가지 비밀은 보통 주 단위로 들어오는 1,000장 이상에서 뽑는다. 일요일에는 전주의 20장 대신 새엽서들을 블로그 페이지에 올린다. 워런이 받은 비밀은 인간 경험의 모든 범위를 다룬다.

매일 주제가 바뀌기 때문에 들어갈때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엿 볼수 있다.
오늘의 주제는 아버지이다.
사진으로만 볼수 있는 아버지를 그리는이
 
아버지와 나의 탄생

당신의 나에게 세계와도 같은 버팀목 이었다고 말해주는 딸

비밀로 이루어졌지만 워런의 블러그는 절대 비밀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등 주요 북미 신문들 중 대부분이 인터뷰했다. 스코트랜드의 데일리 레코드, 런던의 타임즈, 일본의 아사히 신문 등 유럽과 아시아 신문도 관심있게 포스트시크릿을 다뤘다. 그리고 워런은 NPR, 20/20, CNN, 폭스 뉴스, MSNBC와 같은 라디오, TV프로그램에도 손님으로 출현했다. 타임, 뉴스워크, 코스모폴리탄, 마리 끌레르 등의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잡지사들도 워런의 비밀을 아주 좋아한다.

이렇게 많은 PR활동 때문에 포스트 시크릿에 방문자가 많을 것이라 충분히 예살할 수 있다. 실제로도 이 블로그는 2년도 지나지 않아 1억 히스트수를 기록했다. 광고 대행사를 끌어들일 수 있는 트래픽이지만, 워런은 포스트시크릿이 '상업적인 사이트도 사업도 아니라는' 점을 째발리 지적한다. 광고가 블로그의 커뮤니티 속성과 맞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비밀을 존중하지 못할 수 있다는 근거로 광고 계약을 거절했다.

광고를 기피하기는 했지만 노력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도 있었다. 대학가서점, 박물관 등이 의뢰하는 강연 요청은 받아들였다. 포스트시크릿 책이 4권 나왔는데, 각각 포스트시크릿 블로그에 나오지 않은 비밀 수백 가지를 모았다. 웹사이트에 엽서가 나옴과 동시에 책과 강연에 나올 엽서도 선택한다.

워런은 상도 꽤 많이 받았다. 2005년과 2006년 타임지가 선정한 '멋진 웹사이트 50선'중 하나였다. 2006년에 블로그 어워드의 6개 부문에서 수상했고, 2007년 올해의 블로그에 인정받았다. 애드버타이징에이지의 인기 블로그 리스트에도 올랐다. 포브스닷컴은 인터넷에서 가장 훌륭하고 영향력 있는 현명한 인물을 뽑은 웹스타25에 워런을 포함시켰다. 포브스닷컴에 따르면 '밑바닥부터 디지털 세계를 창조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블로그히어로즈 참고-
posted by Blogsecret




"나는 더이상 TV를, 뉴스에 난무하는 그 거짓말을 보고 들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적인 뉴스는 하나도 없습니다. (중략) 뉴스 프로그램들은 날 미치게 만들지만, 그런망할 것들이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 살람팍스의 평화를 위한 블로그' 중에서
http://dear_raed.blogspot.com/

살람팍스와 블로그
이라크 전쟁이 막 시작되던 무렵인 지난 2003년 3월 전 세계의 신문과 방송들은 일제히 한 블로그를 집중 조명했다. '살람팍스(Salam Pax)'란 필명을 사용하는 이라크 청년이 운영하는 이 블로그는 당시 바그다드 현지의 숨가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해주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일부 언론들은 살람팍스의 블로그를 '21세기판 안네의 일기'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만큼 살람팍스가 바그다드 현지에서 시시각각 전해오는 소식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특히 살람팍스가 전쟁터에서 조심스럽게 올린 인터넷 일기는 전 세계에 블로그란 존재를 널리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물론 블로그가 2003년 무렵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1997년 무렵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블로그는 특히 2001년 발생한 9.11 참사 이후 미국에선 이미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다. 한국 역시 2002년 말부터 블로그 서비스 전문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블로그가 확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주로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확산됐다면 살람팍스를 계기로 일반인들도 블로그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흔히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새로운 매체가 힘을 얻는다고들 한다. 제2차 대전 당시 전쟁 소식에 목말라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누렸던 라디오부터 케네디 암살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의 현장에 함께 했던 텔레비전, 그리고 제 1차 걸프 전쟁 당시 급부상했던 24시간 뉴스채널 CNN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또 코소보 전쟁이나 다이애나 자동차 사고 같은 대형 사건들은 인터넷 신문이 자리잡는 데 중요한 기회로 적용했다.(Hall 2001 107쪽)

살람팍스의 블로그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 할수 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현지의 생생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전 세계인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당시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주류 매체들은 상당한 보도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전쟁 지역에 직접 접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때론 전시라는 점을 감안해 언론들이 '알아서' 자체 검열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앵무새처럼 전환을 되풀이하는 언론 보도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살람팍스의 블로그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언론들의 이라크 현지 소식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할때 살람팍사는 현지인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전해줬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바로 '누구나 손쉽게 만들수 있으며' 최신 글이 맨 위로 올라오는 '언제 어디서나 수시로 업데이트 할수 있다는' 블로그 특유의 형식적인 장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폭격과 포격은 그날 밤 6시부터 9시 혹은 10시까지 그리고 다시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자행되었으며 그 와중에 세 번의 커다란 폭음의 지축을 울렸습니다. 몇몇 바보들은 소총과 권총을 쏴대기 시작했지만, 그로 인해 나의 망상적인 이모는 미군들이 거리에까지 진입했다고 믿어버렸습니다. 그날 밤에는 캄감한 거리를 순찰하는 무장차는 딱 한대뿐이었습니다. 시내 중심가에 사는 삼촌은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거리에는 모두 군인들밖에 없어서 마치 전장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의 집 대문 바로 앞에는 히즈비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은 그들에게 차와 빵을 주거나 먹을 것들을 가방에 넣어 주기도 했답니다(pax 2003/2003 p219)

살람팍스의 블로그는 이처럼 전쟁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직장에 나가고 또 나름대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진리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한마디로 신문 기사속의 전쟁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전쟁을 생생하게 전해준 것이다. 이 같은 매력에 힘입어 살람팍스의 블로그는 그 당시 막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던 블로그의 인기에 불을 지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람팍스의 안전을 걱정하는 가운데, 글을 통해서 그를 만날 수 있도록 해준 블로그란 존재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살람팍스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블로그 전도사 역할을 감당했다.(블로그 파워)

posted by Blogsecret